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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쓴 이야기11

우리 모두에게 눈부신 안부를 백수린 소설가의 첫 장편 소설 를 읽었다.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사전예약으로 받았지만 일상에 치여 바로 읽지 못하고 며칠이 지나서야 읽기 시작했다. 주로 새벽에 일찍 일어나, 점심시간에 산책을 하며 환한 빛 속에서 읽었다. 다 읽고 난 지금 역시 아침이 밝아오는 빛 속에 가만히 앉아 있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작가가 펼쳐놓은 마음과 장면들에 흠뻑 빠져 있으면서도 내가 이 작가의 문장과 인물들에 왜 이리 끌리는지 자꾸만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발견했다. 키워드는 “다정”과 “빛”이었다. 나에게 없는 무언가를 백수린 소설가의 이야기 속 인물들에게 발견하고 나도 모르게 그들을 닮아가고 싶어 한다는 걸 를 읽으면서 비로소 깨달았다. 피한 것이다. 달아난 것이다. 나에게 다가와 마음의 문고리를 잡고 흔드는 .. 2023. 6. 8.
별의 시간 별의 시간 클라리시 리스펙토르가 쓴 마지막 작품이다. 작가 본인의 삶 가운데 일부를 떼어 내 형상화한 두 인물이 등장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둘은 기존의 작품들에 등장한 (리스펙토르를 닮은) 인물들에 비해 작가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지성의 이해를 불허하는 인물인 마카베아는 언어로 재현할 수 없는 신비 속에 있다. 마카베아의 비극적인 삶은 이상하리만치 강렬하고 선명해서 마치 서사가 아닌 사진처럼, 단숨에 치고 들어왔다 사라지는 강렬한 빛-순간처럼 다가온다. 스물세 살에 쓴 데뷔작 『야생의 심장 가까이』에서 언어와 사고를 통해 가장 멀리까지 다다르겠다고 선언했던 리스펙토르가 마지막으로 당도한 지점이 여기다. 언어적 사고를 무효로 만드는 순정한 비극 혹은 세계. 이 공허하고 투명한 .. 2023. 3. 7.
굴과 모래, 지구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 *이 글은 2022년 가을호에 실린 주영하 작가의 를 읽고 쓴 글입니다. 이번호에 실린 주영하 작가의 를 읽고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마음 속 한편에 사라지지 않는 죄책감 혹은 불안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지구에 인간이란 생명체가 어떤 몹쓸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소위 말해 환경 파괴라는. 소설 속에는 굴 장사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내외가 등장한다. 그들은 꼭 세상 끝에 남은 유일한 부부 같이 보이기도 한다. 그들에게 굴은 생계 수단이자 인생의 전부이다. 그런데 그 굴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을 이어주고 있던 바닥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예언처럼 굴이 사라지면 모래의 세상이 온다는 말이 두 사람을 불안하게 맴돈다. 이들의 모습은 누군가의 탐욕에 의해 유일한 삶의 의지 가지를 허무하게 빼앗.. 2022. 11. 15.
삶과 예술의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비비안 마이어 전기> 비비안 마이어 부제: 보모 사진작가의 알려지지 않은 삶을 현상하다 원제 VIVIAN MAIER DEVELOPED: The Untold Story of the Photographer Nanny By Ann Marks 비비안 마이어를 처음 만나다 “비비안 마이어”라는 매력적이고 미스터리 한 인물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많은 이들이 그랬듯 그 인물의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와 현상도 하지 않은 채 남긴 수많은 작품에 매료되었다. 그 사진들을 보며 나 자신을 보았다. 나 역시 그런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었다. 비비안 마이어에겐 내게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대범함과 끈기, 집작에 가까운 몰두와 재능이라 불리는 어떤 것. 반가웠다. 내가 보고 싶었지만 다가가지 못했던 세상에 용기 있게 걸어 들어가 순간을 담아 시간을.. 2022. 10. 10.